향후 10년 이내에 과학자들은 유전자의 기능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점점 더 능숙하게 유전자의 기능을 온-오프시킬 수 있게 될 것이며, 정교하게 유전자를 재조합하여 유전 암호를 변경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명체의 생물학적 유전 암호 중 어떤 것을 영구적으로 변경시킬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사회와 문명이 지구의 유전자 풀을 ‘조작하는’ 데 몰입하는 한, 새로운 생명공학 기술의 진보와 함께 우생학적 결정을 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유전공학의 기본 논리에 따르라는 사회적 압력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특히 이것이 인간에게 적용될 때, 그 압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생명공학 세기에 부모들은 자식들이 어떤 ‘바람직하지 않은’ 형질을 유전받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난자와 정자의 유전자를 변경시키지 않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운에 맡겨 아이를 낳을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정자와 난자, 배, 태아 또는 시험관 수정과 대리모 출산을 위해 기증받은 타인의 난자나 정자의 유전자를 교정하여 아기를 낳을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방법을 선택하여 아이의 생물학적 운명이 유전자의 운명에 따라 좌우되도록 내버려두었을 경우, 발생하고 있는 태아에 치명적인 유전자 이상이 나타나고, 이것이 성세포나 배 단계에서 유전자 교정으로 치유될 수 있었던 것이라면, 부모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은 시나리오는 생명공학 세기에서 점점 더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부모가 태아의 유전자를 ‘교정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아기가 치명적인 유전병을 안고 태어나고 결국 젊은 나이에 죽었다면, 그 병을 일으키게 하는 유전자 형질은 단순한 유전자 수술을 이용하여 수정란으로부터 제거될 수 있었다. 생명공학의 세기에서는 아기가 자궁 내에 있을 때 부모가 유전자 결함을 교정해 주지 않는다면, 이는 흉악한 범죄로 간주될 수 있다. 사회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궁 속의 아기를 위해 가능한 한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책임을 부모에게 지울 수 있으며, 이를 하지 않는다면 부모의 의무 불이행으로서, 법적인 책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윤리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어머니가 코카인에 중독된 아기나 태아 알코올 증후군에 걸린 아이를 출산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적 판단은 이미 존재한다. 검찰은 고통스러운 중독증을 자녀에게 물려준 어머니를 현행 아동학대법하에서 과실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며, 자녀의 생활 양식에 미친 영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즉, 미국 내에서 ‘불법적 생존’과 ‘불법적 출산’의 소송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소송은 이미 300여 건 이상 법원에서 완결되었거나 계류 중에 있다. ‘불법적 출산’ 소송은 심각한 질병에 걸리거나 불구가 된 아기의 부모가, 자신의 아이는 태어나지 않게 해야 했다고 주장하면서 담당 의사나 병원을 상대로 제기하는 것이다. 이 소송의 주장은, 담당 의사가 자궁 속 아기의 건강 문제에 대해 부모에게 조언하지 않고, 시술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태아를 낙태시킬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의료 책임을 물은 것이다. 반면, ‘불법적 생존’ 소송은 자신은 결코 태어나서는 안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식이 대리하거나 자식이 직접 소송을 제기하는 형태이다. 현재는 대부분 이러한 소송이 담당 의사를 상대로 제기되지만, 장래에는 ‘불법적 생존’의 소송에서 부모가 적절한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거나, 검사 결과를 무시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결과로 출생한 과실에 대해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1975년 폴과 셜리 버만 부부가 뉴저지 주에서 제기한 소송은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례로 제시된다. 버만 부부의 딸 샤론 양은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고, 부부는 당시 산모의 나이가 38세였기 때문에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기가 태어날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양수천자 검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조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실을 주장했다. 버만 부부는 만약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낙태했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들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불법적 출산’ 소송뿐만 아니라, 자식을 대리하여 자식이 평생 받을 고통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불법적 생존’ 소송도 함께 제기하였다.
뉴저지 주 대법원은 버만 부부의 ‘불법적 생존’ 소송을 기각했다. 그 이유는 버만 부부의 주장이 “형이상학적”이라며, 법원이 “병이 악화된 상태에서 생존과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무의 상태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모리스 패쉬맨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미성년자인 원고는 궁극적으로 자신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죽음이나 비존재의 상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여섯 개의 주에서는 ‘불법적 생존’ 소송을 통한 배상 청구를 제한하거나 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일부 법원은 자식이 ‘불법적 생존’의 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인정하기도 했다.
이 사례들은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윤리적, 법적 문제들을 잘 보여준다. 특히 유전자 교정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부모가 태아의 유전자 결함을 교정하지 않거나 이를 무시하는 것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이 더욱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선택을 넘어,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기준을 재정립하는 중요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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