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

아찔한 선택

생명의 이해 2024. 12. 1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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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 검사에서 생식세포 계열 유전자 조작과 상업적 우생학 시대를 위한 철학적 토대가 마련된 것은 이미 오래된 현실이다. 현재 많은 임산부들이 자궁 내 태아를 검사하여 유전병이나 ‘결함’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양수천자다. 의사들은 주삿바늘을 자궁 내로 삽입하여 양수의 일부를 뽑아내는데, 이 양수에는 태아 세포가 포함되어 있어 이를 검사함으로써 150여 가지 이상의 유전적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양수천자는 임신 14주에서 20주 사이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좀 더 최근에 사용되는 방법으로는 융모 검사로, 임신 9주에서 10주 사이의 태아에서 융모막 조직을 떼어내어 유전자 검사를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더 이른 시기에 결함을 찾아내기 위한 기술이다.

 

이러한 태아 검사는 유전자 이상을 발견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 중 일부만 치료가 가능하다. 따라서, 유전병이나 심각한 질병이 발견될 경우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태아를 낙태하거나, 임신 만기를 다 채워 아이를 낳는 것이다. 이는 임산부에게 큰 윤리적 딜레마를 안겨주며, 자궁 내 태아를 죽일 것인가, 혹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일찍 죽을 수 있는 아이를 그대로 낳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는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 이 문제는 역사적으로 선례가 없으며, 많은 부모들은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한다. 또한, 이를 돕는 의료 유전학자도 미국 내에서 1,000명도 되지 않아 결정이 더욱 어려워진다.

 

유전병에 따라 임산부는 낙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테이색스 병, 듀션 근이영양증, 가우스 병 등은 유년기에 나타나서 치명적이다. 이 병들은 생후 몇 년 내에 발병하여 아동이 사망하게 된다. 헌팅턴무도병이나 낭포신장병은 늦은 나이에 발병하므로 결정이 더 복잡해진다. 어떤 임산부는 아이가 중년까지는 헌팅턴무도병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그 후에 발병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 낙태를 선택해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아이를 낳아야 할지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유전병들은 임산부에게 아이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또한, 척추피열과 다운증후군과 같은 유전 질환은 증상이 가벼운 정도에서부터 극단적인 쇠약 증세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부모들이 이처럼 미지의 가능성까지 고려하여 자식의 삶의 질에 대한 한계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이는 발육이 지체될 수 있지만, 이 정도의 지체는 약간일 수도 있고 심각할 수도 있다. 또한, 양육 환경에 따라 아이의 발달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부모가 선택하는 것은 단순히 질병의 유무만이 아니라, 그 질병의 정도와 아이가 가진 잠재력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지를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더라도, 그 징후가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경우가 많아 부모들이 잘못된 선택을 할 위험이 크다. 예를 들어, 태아가 결함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유전자에 의한 질환이 생길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1970년대에는 많은 남성들이 Y염색체를 핵외 유전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일부 과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Y염색체를 가진 남성이 더 도전적이고 반사회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쇄 살인범 리차드 스펙이 핵외 유전된 Y염색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형질을 ‘범죄적’ 특성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속 연구에서 Y염색체를 가진 많은 남성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러한 주장은 불확실성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태아에 대한 유전자 검사가 불확실성을 동반한다는 중요한 사례를 제공하며, 부모들이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를 잘 보여준다.

 

기존의 검사 방법으로는 부모가 태아의 유전자 이상을 발견하고, 그 후 낙태하거나 아이를 그대로 낳는 것 외에는 선택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체외 수정 후 유전자 검사를 통해 수정란을 자궁에 이식하기 전에 결함 유전자를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1992년 3월, 런던에서 체외 수정 후 유전자 검사를 받고 자궁에 이식된 수정란에서 태어난 클로에라는 아이가 최초로 정상 출산되었다. 이 아이는 수정란이 배 단계에서 낭포성 섬유증 유전자를 검사받고, 결함 유전자가 없는 정상적인 유전자를 가진 배로부터 태어났다. 이와 같은 유전자 검사 기술은 현재 다른 유전병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겸상적혈구빈혈증, 테이색스 병 등의 유전병에 대해서도 이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부모들이 태아의 유전적 상태를 미리 알게 되면,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낙태를 선택하기보다 치료가 가능한 질병을 미리 발견하여 출산 후 치료를 받도록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부모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완벽한’ 자녀를 만들려는 압박감도 함께 증가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사회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유전자 검사 기술의 발전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발전된 유전자 검사 기술은 부모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생명에 대한 윤리적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유전자 검사와 생식세포 계열 유전자 조작은 점차 상업적 우생학을 가능하게 하며, 인간의 유전적 특성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삶과 윤리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선택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선택적 출산이 가능한 시대에서 유전자 결함을 가진 아기가 태어날 가능성을 줄이려는 사회적 압박이 커질 것이다. 또한, 우생학적 접근이 과연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가 마주할 윤리적, 사회적 딜레마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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