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0년 동안 인류는 지구의 생물권을 구성하는 거대한 생태계를 영리 목적을 위해 점차적으로 사유화해 왔다. 지구의 유전자 풀을 특허받으려는 전 세계적인 경쟁은 이러한 사유화 경쟁이 절정에 이른 예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에서 점차적으로 더 큰 통제력을 가지려는 시도로 볼 수 있으며, 이는 그 결과가 무엇이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전개를 낳았다. '엔클로우저'의 역사는 세계 유전자 풀을 점유하려는 현재의 노력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 공유지의 상품화는 16세기 초, 잉글랜드 튜더 왕조가 '엔클로우저 법령'을 제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법령은 영지 내 공유지의 사유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고, 그 결과 공유지로 여겨지던 땅이 개인 소유의 부동산으로 바뀌어 시장에서 매매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사회 및 경제적 개혁을 일으켰고, 토지와 사람의 관계를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이로 인해 근대 시대 동안 사회는 개조되었고, 자연 세계와 인류의 관계도 새롭게 형성되었다. 인간의 존재는 이제 더 이상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경제적 자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중세 유럽의 경제생활은 대부분 마을 공유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봉건 영주가 공유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이 땅은 다양한 임차 제도를 통해 농민들에게 임차되었다. 임차 농민들은 그 대가로 일정 비율의 수확을 영주에게 바치거나, 일정 기간 동안 영주의 경작지에서 노동을 제공했다. 이 당시 농업은 공동체적 성격이 강했으며, 사람들은 상호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생산 활동을 이어갔다. 중세 후기에는 화폐 경제가 도입되면서 소작료나 세금으로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이는 경제적 관계를 더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만들어 가는 한편, 사람들 간의 경제적 차이를 명확히 드러내게 했다.
당시 농업은 공동으로 이루어졌으며, 농민들은 자기 땅을 공용으로 내놓아 공동으로 경작했다. 또한 각자 소유하는 가축들은 공동 목장에서 방목되었다. 생활은 힘들고 예측할 수 없었으며, 많은 농민들이 궁핍한 상태에서 살아갔다. 마을 내에서 대부분의 자원이 공유되었고, 사람들 간의 관계는 전통적인 공동체적 방식에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체적 방식은 점차 약해지고, 외부의 경제적 압력에 의해 그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정치, 경제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잉글랜드 튜더 왕조 시대를 기점으로 마을 공동생활을 침해하며 이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 세력들은 대륙에서도 등장했으며, 결국 '엔클로우저' 운동으로 이어졌다. '엔클로우저'란, 인간이나 동물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땅에 울타리나 도랑 등을 둘러 일정 부분을 사유화하는 과정이었다. 이는 마을 공동체가 지니고 있던 땅에 대한 권리를 제거하고, 이를 개인의 통제 아래 두는 방식이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변화시키며, 자연을 단순한 자원으로 보기 시작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냈다.
16세기와 19세기 사이, 유럽 각국은 공공 소유의 땅을 사유화하는 행정 명령과 법령을 제정했다. 이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농민들은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잉글랜드는 두 차례의 엔클로우저 운동을 겪었다. 첫 번째는 16세기 튜더 왕조 시대였고, 두 번째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조지 3세 시대에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 경제적 불균형을 심화시키며, 농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켰다.
두 번째 엔클로우저 운동은 도시 인구의 급증으로 식량 수요가 증가하고, 악성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영주들은 고정된 토지 임대료를 받던 중이었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영주들이 받는 비용이 증가했다. 그와 동시에 섬유 산업의 확장으로 양모 수요가 급증하면서, 영주들은 양 방목에 적합한 땅을 필요로 했다. 이에 따라 영주들은 공유지를 사들여 양 방목을 위한 목장으로 바꾸게 되었다. 이는 자연을 이용한 새로운 경제적 방식의 도입을 의미하며, 농업과 인간 사회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부유한 신흥 부르주아 계층, 즉 상인과 은행가들이 금융 지원을 한 덕분에, 영주들은 공유지를 사들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했다. 이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사람과 땅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땅은 더 이상 공동의 재산이 아니라, 개인의 재산으로 바뀌었으며, 사람들은 피고용인이나 계약자가 되어 상호 관계가 시간당 임금으로 대체되었다. 이는 유럽 문명에서 중요한 변화를 초래했다. 경제적 가치가 절대적 기준이 되면서, 사람들의 존재는 노동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존재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길버트 슬레이터는 엔클로우저 운동을 설명하며, 마을의 공유지가 사유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큰 변동을 상상해 보라고 했다. 관리들이 마을에 들이닥쳐 땅을 조사하고 가치를 매긴 후, 마을의 공유지를 정리하여 경작 가능한 땅과 목초지로 구획하였다. 그 후 구획된 땅에 소유자를 정하고, 과거의 모든 관계는 무효화되었다. 이로써 사람들은 더 이상 함께 경작하거나 목초지를 공유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공동체 기반 사회를 완전히 붕괴시키고, 새로운 경제적 질서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엔클로우저는 유럽 문명에 새로운 개념의 인간 관계를 형성하게 했으며, 경제적 안정의 기반을 마련하고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켰다. 땅은 이제 단순한 공동의 자원이 아니라, 개인 소유의 상품이 되었고, 사람들은 피고용인이나 계약자라는 방식으로 상호 관계를 맺었다. 이 변화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재정적 계약 조건에서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끌었고, 유럽의 엔클로우저 운동은 근대적 사고의 기반을 마련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엔클로우저 운동은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영향력을 미쳤으며, 오늘날 모든 땅은 구획되어 개인 소유가 되거나 정부의 통제하에 있다. 남극 대륙을 제외하고는 모든 땅이 사유화되었고, 이 과정을 통해 전 세계의 공유지 또한 사유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런 변화는 인간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경제적 사고를 중심으로 한 재구성을 일으켰고, 그 결과는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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